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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을 도와준 16개국

자기계발365 2019. 1. 2. 11:51


대한민국을 위해 참전했던 16개국에 대해서 알아보자




ㅁ 미국


48만명 참전, 3만6574명 전사, 10만 3284명 부상, 3737명 실종, 4439명 포로


지금의 한국을 있게 해준 나라.


한국을 돕기 위해 가장 많은 도움을 준 나라.

현대의 한국사에 좋은 쪽이든 안 좋은 쪽이든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나라.


너무 유명하니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




ㅁ영국


5만6000명 참전, 1078명 전사, 2674명 부상, 179명 실종, 997명 포로


미국의 전통적인 우방 영국도 한국전쟁에 2번째로 많은 군인들을 파병했다. 미국과 마찬가지로 2차대전 직후 군축으로 병력이 부족했던 영국은 영연방 국가들에게 지원을 부탁 하였고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남아프리카 공화국, 인도 등의 국가가 합세하여 '주한 영연방국'을 결성하였다. 


다른나라들은 전부 미군 소속으로 미군의 지휘를 받았지만 영국만은 독자적 지휘권을 가지고 싸웠다. 다른 나라 군대에 비해 활약이 적어서 그렇지 영국군은 보병부대 뿐만 아니라 기갑, 전투기, 항공모함 까지 운용했다. 임진강 설마리 고지 전투에서 3만의 중공군에 맞서 싸운 글로스터 대대의 항전은 지금까지도 회자되고 있다.




ㅁ 터키


1만 4936명 참전, 741명 전사, 2068명 부상


'형제의 나라'

터키는 2차대전이 끝나고 냉전이 시작되자 머리위에 있는 소련을 극도로 경계했다. 특히 공산주의 이념은 그들의 전통적인 이슬람 교리에 이율 배반하는 사상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미국에게 협력하며 나토 가입과 자유 세계의 일원이 되기를 원했다.


한국전쟁 파병 이유 또한 이러한 상황에서 나온 것이다. 이때 터키는 1개 여급의 병력을 파병하므로써 미국에게 신뢰를 얻었고 1952년 나토에 가입한다.


당시 터키군은 제식화기로 독일제 무기를 써서 연합군과 탄종호환이 되지 않았다. 그래서 한국에 도착해서 미제 무기로 훈련부터 다시 받았다.


터키 정부는 한국을 돕는 이 전쟁을 지하드, 즉 성전으로 선언했다. 이 때문에 이슬람교를 믿던 터키군은 다른 유엔군들에 비해서 사기가 매우 높았고 전투에서도 알라후 아크바르를 외치며 싸웠다. 포로가 되서도 공산진영의 세뇌,에 단 한명도 넘어가거나 배산하지 않는 등 엄청난 단결력을 보였다.




ㅁ그리스


4992명 참전, 188명 전사, 459명 부상


2차대전때 독일한테 점령당했던 그리스는 1944년 해방됬지만 해방과 함께공산주의 게릴라들과 5년간의 내전(그리스 내전)을 벌였다. 원래 그리스 정부는 내전이 끝난 직후라서 처음에는 소수인원만 보내서 생색내기식 파병을 하려 했지만 위에 철천지 라이벌 국가였던 터키가 먼저 파병을 하자 '질수없다' 라고 외치며 1개 대대병력을 파병 하였다.

(이 부대의 이름이 스파르타 대대다.)


선발된 인원도 전부 그리스 내전에서 싸웠던 베테랑들 있었다. 그래서 공산주의에 대한 증오가 강했다고 한다. 그리스와 터키 양국은 전쟁도 여러번 치뤘고 현재까지도 서로를 가상적국 1호로 규정하며 으르렁 거리는 사이지만 한국에서 만큼은 선의의 라이벌로 전공 경쟁을 벌이며 함께 싸웠다.




ㅁ오스트레일리아


8407명 참전, 339명 전사, 1216명 포로, 3명 실종, 26명 포로


영국의 영원한 동맹국 1호


호주-뉴질랜드 연합부대인 ANZAC군의 일원으로 참전하였다. 재밌는 점이 있다면 당시 이승만 대통령의 영부인 프란체스카 여사의 국적이 오스트리아였는데 이 두나라를 헷갈렸던 한국인들은 오스트레일리아군이 프란체스카 여사의 나라 오스트리아에서 온줄 알고 '장인나라에서 사위 도와주려고 보낸 군대'라고 불렀다. 이때 오스트레일리아군은 공군도 함께 참전 했는데 피난민들은 굉음을 내며 북으로 날아가는 비행기들을 '호주기'라고 불렀다.(더불어 프란체스카 여사의 별명도 엉겁결에 '호주댁'이 되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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